균형 있는 SW전문가 [전자신문]
사실 우리나라의 SW 산업 자체만으로 보면 그렇게 나쁜 시장이 아니다. 2002년 말을 기준으로 전체 시장규모 14조원, 2003년도에는 18조원 정도의 시장규모를 형성했다. 더욱이 94년 이후 30%의 고속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그다지 비관적으로만 볼 수 없는 요소다. 국내 SW산업 부문은 약 5500개의 기업에 산업종사자만 10만명이 넘는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겉으로만 본 상황이고 내부를 살펴보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다. ‘빌 게이츠도 한국에 와서 SW 사업하면 망할 것’이라고 이야기할 만한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국내에서 기업들이 구입하는 대부분의 SW는 외산이고 SW 시장의 63%를 SI산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그나마 이 시장은 대기업 SI사의 독식으로 기형적인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대형 SI사와 중소SW개발업체와의 관계는 ‘갑을관계’라는 말로 표현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왜곡돼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체념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만이 방법인가. SW산업이 지금까지 언급한 문제점을 타개해 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주먹구구식 개발, 부실한 사용자 지침서, 개발이 끝나지도 않은 제품을 로비나 인맥에 기대어 판매하려고 하는 마케팅 전략과 같은 행태를 버리고 완전히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많은 기업이 다시 시작하려고 마음 먹고 있고,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생각지도 않은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다. SW 전문가의 부재도 그 암초 중 하나다.
SW 전문가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개발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코딩 잘하는
사람=SW전문가”라는 등식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사실 일반인뿐 아니라 SW산업에 종사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SW전문가라는 말이 개발을 잘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개발을 잘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SW를 만들어 성공하는
시대는 벌써 10여 년 전에 흘러가고 말았으니 말이다.
일부에서는 SW아키텍터라는 충분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제일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분야별 SW전문가가 균형 있게 존재해야만 우리나라 SW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SW전문가에는 개발을 잘하는 사람도
포함되지만, 그 외에도 품질관리 전문가·기술문서 작성 전문가·프로젝트 관리 전문가·시장 조사 전문가·설계 전문가·컨설팅 전문가·제품 분석
전문가·마케팅 전문가 등도 포함돼야 마땅하다.
이러한 전문가들이 균형 있게 존재하는 시장이 있다. 바로 SW 강국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시장이다. 미국의 SW 상품이 성공한 원인 중 상당 부분은 이 전문가들의 활약 때문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약간 다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한국의 많은 기업이 선진국 시장에 진출하려고 할 때에 초기진입이 가장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러한 전문가들의 역할과 존재를
무시하고 ‘제품의 기능과 가격’만으로 공략포인트를 잡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제품은 기본이 안돼 있다”든지 “한국인은 80점짜리 제품만 들고
온다”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SW전문가=개발 잘하는 사람”이라는 등식을 우리 스스로 깨고,
다양한 SW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SW전문가 스스로 사회적으로 대접받고 있다고 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정부·공공기관·대기업과 같은 고객이 먼저 SW전문가를 요구해야 하며, 기업이 이를 받쳐주는 형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만약 3개월 동안 ASP,
JSP와 같은 웹 프로그래밍 과정만 수료하면 ‘SW전문가’라는 꼬리표를 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몇 만 명이니 십만 명이니 하는
숫자만이 의미를 가지는 IT인력양성 정책을 고집한다면 한국SW 희망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
<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email protected]>